한 권의 컬러링북으로 피어나는 어린 날의 시간

엄마에게 새로운 컬러링북을 드렸다
등목, 만화방,
어릴 적 길거리와
검은 고무신이 있었던 골목,
봄이면 마당에 핀 목련,
여름이면 방앗간 옆 냇가 소리.
컬러링북의 장면들은
그냥 그림이 아니라
엄마의 기억이었다.
색을 칠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덧칠하는 시간.
노란색 크레파스 하나로, 여름이 되었다
물동이를 들고,
조금은 억세지만 따뜻한 손으로
아이를 씻기던 어머니.
어쩌면 그 아이는
엄마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노란 크레파스를 들고
해를 칠하고,
대야 안 물빛에 파란 색을 얹었다.
나는 그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었다.
그림이 아니라 시간의 색이 칠해지고 있었다.
나는 몰랐다, 그림이 이렇게 말이 많을 줄은
엄마는 칠하면서 웃기도 하고
갑자기 멈추더니
“여기 이런 집 있었지…”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 한 마디에
그날의 바람과
수세미 꽃의 노랑이 함께 흘렀다.
엄마의 손이 그림 위를 천천히 지나갈 때
손가락 마디가 툭 튀어나온
그 손이
색연필을 잡고 움직일 때
나는 잠시 시간을 잊는다.
그리고 느낀다.
엄마의 사계절은
지금 이 책 한 권에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


🌙 밤빛 노트
이 계절,
엄마는 다시 봄을 칠하고 있다.
여름의 물소리를 그리고,
가을의 들녘을 덧칠하고,
겨울 골목의 하얀 추위를
따뜻한 색으로 감싸고 있다.
엄마의 사계절은,
이제 매일 조금씩
색을 입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