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톨릭 교황 선출을 둘러싼 비밀 회의, 콘클라베.
2025년 5월 7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전 세계 70개국, 133명의 추기경들이 다시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사도좌가 비워진 그날, 80세 미만의 이들에게만 주어진 한 장의 투표권은
신의 뜻을 인간의 손으로 옮겨 적는, 가장 무거운 침묵이 되었습니다.
지켜보는 이들은 다시 ‘선택’이라는 이름의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로 "자물쇠로 잠근 방"이라는 뜻이에요.
교황이 서거하거나 사임하면,
전 세계에서 모인 추기경들이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여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상태에서 새로운 교황을 선출합니다.
찬반투표를 반복하며,
3분의 2 이상 지지를 받은 후보가 나올 때까지 진행되죠.
선출이 되면, 굴뚝에서 흰 연기가 올라 전 세계에 새로운 교황의 탄생을 알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신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콘클라베 – 내가 좋아하는 배우, 그리고 엄마와 함께한 충격의 엔딩
나는 랄프 파인즈를 좋아한다.
어떤 영화든 그가 나온다면, 무조건 본다. 콘클라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나는 주저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90세의 엄마와 함께였다.
"사실은 내가 보고 싶어서였어…"
엄마는 자막이 빨라서 거의 못 읽으신다. 복잡한 내용은 따라가기 힘들어하시고, 영화관의 어둠 속은 그리 편한 공간도 아니다.
그래도 나는 엄마를 모시고 갔다.
사실, 정말 보고 싶었던 건 나였다.
랄프 파인즈가 출연하고, 줄거리도 흥미로웠고, 예고편에서부터 이미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미안했다.
하지만 그 미안함은 영화가 끝날 즈음, 감사함으로 변해 있었다.

교황의 자리는, 경계를 넘어선 자에게
콘클라베의 이야기는
교황 선출이라는 장엄한 주제를 배경으로 한다.
권력, 신념, 인간의 약함과 신의 선택이 교차하는 숨 막히는 서사.
하지만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가 교황이 되었다.
그리고 밝혀진 진실—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인접성 ‘자웅동체’였다.
순간, 숨이 멎었다.
그 설정이 지나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차라리 그것이야말로 가장 ‘중립적’이고,
어쩌면 가장 신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인간이 만든 모든 경계를 의심하게 만든다.
성별, 권력, 종교, 진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준에 갇혀 살아가는가.
자웅동체를 지닌 생각보다 몰랐던 친근한 동물들
"자웅동체(Hermaphrodite)"는 하나의 개체 안에 암수 생식기관을 모두 갖춘 생물을 뜻한다.
이러한 생물은 번식 전략상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자연계에서 꽤 흔하게 나타나고
콘클라베의 엔딩에서 언급된 자웅동체라는 설정도, 어쩌면 이런 생물학적 ‘경계 없음’에서 영감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모르고 있었던 자웅동체를 지닌 동물들이 알던 동물들중에서도 새삼 많았고 알게되어 흥미로왔다.
대표적인 자웅동체 동물들

달팽이 | 거의 모든 달팽이는 자웅동체로, 짝짓기 시 서로 교배 가능 | 느림, 침묵, 양면성의 은유로 종종 문학에서 사용됨 |
지렁이 | 자웅동체이지만 교배는 필수, 땅속에서 번식 | 땅, 생명력, 재생력의 상징 |
흰동가리 (니모) | 수컷으로 태어나 후에 암컷으로 성전환 가능 | 환경에 따른 유연한 정체성 변화 |
해양 나디브라 (바다 민달팽이류) | 화려하고 다양한 색채의 자웅동체 생물 | 아름다움과 다면성, 성의 유동성 표현에 적합 |
플랫웜 (평형동물) | 짝짓기 때 '페니스 결투'라는 방식을 씀 | 본능과 전략의 양면성 |
문어 (특정 종) | 성전환 및 성 기능의 일시적 변화 가능 | 지능과 신비, 변화의 상징 |
90세 엄마의 한마디
엄마는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셨다.
거의 읽지 못했을 자막, 하지만 느끼셨을 긴장. 영화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엄마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사람이 만든 경계가, 사람을 갈라놓기도 하네.”
나는 울컥했다.
그 한 문장이, 이 영화를 정리해 버렸다. 엄마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시간 동안 무언가를 함께 느꼈다는 확신이 들었다.
자막이 아니라, 감정의 리듬으로 따라오셨던 것이다.
우리의 자리, 그 어둠 속의 빛
서로 나란히 앉아 붉은 좌석에 묻힌 두 사람. 화면 속 신의 궁전은 어둡고,
중앙엔 한 존재가 서 있었다.
그 순간의 우리 모습이 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 밤빛 노트 – 오늘의 기억
“경계 위의 존재야말로, 가장 깊은 이해를 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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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2025 – 영화와 현실에서 교황 레오 14세를 함께 만나다.
어떤 날은 마치 신이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는 듯하다.엄마와 함께 영화 콘클라베를 보았던 날이 그랬다.90세의 엄마는 자막이 빠르면 힘들어하시지만,나는 꼭 이 영화를 보고 싶었다.랄프 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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